통영시약사회


TOTAL ARTICLE : 9, TOTAL PAGE : 1 / 1
통영의 유적지: 통제영 문화유적(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
 운영자  | 2007·04·14 01:08 | HIT : 481 | VOTE : 175
 
 
지정번호 l 사적 제113호
지정년월일 l 1959년 08월 19일
소재지 l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875
문의처 l 제승당 055) 642-8377
 
 

한산도의 이충무공 유적지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의 525,123㎡(159,128평)에 조성된 지상건물, 각종 비석, 동산문화재 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충무공은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그해(1592) 5월 4일 1차 출동하여 옥포, 합포, 적진포해전에서 대승하고 5월 29일의 2차 출동에서 적의 주력함대를 궤멸시킨다.
이어 7월 4일 제3차 출동에서 세계해전사에 찬연히 빛나는 한산대승첩(7월 8일)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한산대첩으로 조선수군은 제해권을 완전 장악하여 왜군의 소위 [수륙병진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이어 8월 24일의 제4차 출동에서는 부산포에 집결해 있는 일본함대 100여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이에 선조는 1593년 8월에 이충무공에게 당시 편제에도 없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고 경상, 전라, 충청 삼도의 수군을 통괄지휘케 하는데 이 무렵 이충무공은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고 장기전에 대비한다.
한산도 두억개에 터를 고르고 진영을 설치하기를 정유년(1597) 2월 26일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3년 7개월 동안 하였는데 운주당을 비롯한 각종 공해, 창고와 부대시설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건립되었는지는 문헌상 명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정유재란으로 한산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지 142년만인 영조15년 (1739)조경 제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옛터에 예대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친필현판을 걸었다.
그후 영조 30년(1760) 이충무공의 후손 이태상제121대 통제사가 낡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유허비를 손질하고 비각을 뒤로 옮겨 세웠다. 그로부터 117년 뒤인 고종 14년(1877) 공의 10세손 이규석 제198대 통제사가 제승당유허비를 새로 다듬어 세우고 옛비는 그 옆에 묻어 두었는데 최근에 다시 발굴하여 2기를 함께 보존하고 있다.

건양원년(1896) 통제영이 혁파되고 뒤이어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게 되자 지방유림에서 제승당을 관리하였으나 재원조달이 어려워 점점 퇴락하여 가고 있었다.
이에 통영군민들은 제승당의 퇴락을 두고 볼 수 없다하여 1932년 3월 15일 [한산도제승당중건기성회]를 창립하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한산도민들은 따로 [모충계]를 결성하여 [충무영당] 건립과 충무공영정 봉안을 추진하여 1933년 6월 2일 [한산도제승당 준공식]과 [충무공영정 봉안식]을 동시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40여년 후 1976년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본 유적지에는 충무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등 당우를 비롯하여 유허비 2기, 한글 유허비 1기, 통제사송덕비 7기, 비각 5동과 5개문(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충무문, 대첩문) 기타 부속건물이 있다.

운영자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통영의 유적지: 통제영 문화유적(당포성지)  운영자 07·04·14 395 174
  통영의 유적지: 통제영 문화유적(통제영지)  운영자 07·04·14 452 166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
Copyright H.S.W. All rights resreved (Designed by H.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