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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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유적지: 통제영 문화유적(세병관)
 운영자  | 2007·04·14 01:03 | HIT : 454 | VOTE : 165
 
국보 305호  
2002년 10월 14일
통영시 문화동 62-1
세병관 055) 650-5365

세병관은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 38년(1605)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으로 개방하였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 일부를 한단 올려 놓았는데 여기에 전패를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이지만, 익공식 수법과 다포식 수법이 많이 보인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직접 화반을 놓아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십일량가로서 대들보를 양쪽 내고 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었다. 종보 위에는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내고주와 전면 평주 사이에는 퇴보를 걸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용마루, 합각마루,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였다


 
유형문화재 제112호  
1974년 12월 28일
통영시 문화동 62
세병관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기사비는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우리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치적이 새겨진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이다.
이 비는 조선 인조 3년(1625)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는데, 당시 창원대도호부사 박홍미가 지은 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통제영 남문 밖의 바닷가 큰 길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광무 8년(1904) 이곳 사람 이학재, 이승주 두 사람이 세병관 앞뜰에 옮겨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귀부가 없어진 듯하고 비신의 아랫부분은 땅에 묻혀 오랫동안 비문의 완전한 판독이 어려웠다.
1996년 4월 12일, 지금의 자리에 새로 비각을 짓고 하대를 새로 만들어 옮겨 세움으로써 1세기만에 비신의 하부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수는 운문(雲紋) 위에서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으로 조형미가 특히 뛰어나다.
자료출처: 통영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tongyeong.go.kr 
운영자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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